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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024
  • 대여금고
    그렉 이건 (지은이), 김상훈 (옮긴이) | 허블 | 2024년 2월 "하드 SF의 거장 그렉 이건 단편집"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남자가 있다. 어제는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는 보석상이었고, 이틀 전에는 벽돌공이었으며, 그 전날에는 남성복 판매원이었다. 어떻게 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옮겨 다니는지, 그 자신 말고 또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숙주들은 1951년 11월에서 12월 사이에 태어났으며, 모두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이다. 지난 22년 동안 시내 중심가에 있는 번호 자물쇠식 대여금고 안에 자신이 1968년부터 옮겨 다녔던 숙주들의 이름, 주소, 생년월일을 정리한 기록을 보관하고 있지만, 태어난 시기와 거주지를 제외하고는 숙주들 사이에는 어떤 뚜렷한 편향이나 패턴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펄먼 정신의학 연구소의 간호사가 되어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떠오른 어렴풋한 가설은 대여금고 속 기록에 적힌 숙주들과 그 사이의 전율할 만한 비밀을 암시한다.

    ‘작가들의 작가’, 하드 SF의 거장 그렉 이건의 새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유전공학, 나노과학, 위상수학, 고전물리학, 양자역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1990년대 초중반의 중단편들을 담은 이 책은 그가 데뷔 이후 첨단 과학 연구의 성과를 서사의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음을 증명한다.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가상 공간에서 육체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자의식을 가진 소프트웨어가 된 인류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묻는 <유괴>, 우생학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블랙코미디처럼 풀어낸 <유진> 등 수록된 작품마다 인류 상상력의 최전선에 서 있는 거장의 압도적인 서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표제작 <대여금고>는 SF의 ‘하드함’이라는 지점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뚜렷한 차별점을 갖는데, 작가 테드 창은 “하드 SF 그 너머의 서정으로 나아간다.”고 평했다.

  • 불변의 법칙
    모건 하우절 (지은이), 이수경 (옮긴이) | 서삼독 | 2024년 2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랑', '믿음', '우정', '소망' 등의 의미도 시간,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인간은 심리로 반응하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변하지 않는 행동양식'이다. 변화는 우리의 주의와 호기심을 항상 끌어당겨 왔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행동 방식은 우리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 모건 하우절이 늘 변화하는 세상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돈의 심리학>이후 3년 만에 내놓은 모건 하우절의 새로운 역작. <불변의 법칙>에서 저자는 수백 년 전의 세계에서 유의미했듯이 수백 년 후에도 여전히 유의미할 '불변의 법칙'을 23가지로 정리했다. 흥미로운 역사 스토리와 일화들을 통해 인간본성과 행동패턴을 이야기하며, 마치 다큐 소설인 듯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력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자는 강조한다. 사람들은 앞으로 무엇이 변할 것인지에 대해 늘 관심을 갖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고. "중요한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이다"

  • 띄어쓰기 경주
    곽미영 (지은이), 지은 (그림) | 만만한책방 | 2024년 2월 "<받침구조대> 후속작, 더 탄탄해진 이야기"

    국어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받침을 어렵고 지루하게만 느끼는 아이들을 쉽고 재미있는 '받침 공부 놀이'의 세계로 안내한 <받침구조대>. 곽미영 작가와 지은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후속작 <띄어쓰기 경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책은 토끼와 거북이의 띄어쓰기 경주 이야기의 틀 안에서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와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전편보다 더욱 탄탄해진 이야기와 구성,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미를 더해 아이와 어른 모두를 단숨에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산신령에게 소원 편지를 보내는 특별한 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거북이는 "점점더크게해주세요", 토끼는 "오이가빨리나게해주세요"하고 산신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띄어쓰기가 적용되지 않은 편지 탓에 거북이는 '왕점'이 생기고, 토끼는 '덧니'가 난다.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은 토끼와 거북이, 그 둘 앞에 놓인 9개의 띄어쓰기 관문을 통과해야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토끼는 토끼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띄어쓰기 관문을 하나씩 통과해 나간다. 그 과정 과정마다 아이디어 넘치는 이야기와 아기자기한 그림, 귀여운 대사로 가득 차 있어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문법의 규칙이나 설명 하나 없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띄어쓰기를 배울 수 있다는 것. 공부하면서 놀고, 놀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내전, 대중 혐오, 법치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트르, 오 게강 (지은이), 정기헌 (옮긴이), 장석준 (해제) | 원더박스 | 2024년 2월 "신자유주의의 지배 전략"

    제목인 내전, 대중 혐오, 법치(법을 이용한 지배)는 책이 분석한 신자유주의의 대중 지배 전략들이다. 신자유주의라니, 새삼스럽다. 저무는 시대의 헤게모니를 톺아볼 차례가 된 것인가? 그러나 이 책은 지난 시대의 회고가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와 사회학자로 이루어진 네 명의 저자들은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파행적 흐름의 원인을 여전히 굳건한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책은 하이에크, 미제스, 슈미트 등 대표적인 자유주의 이론가들의 사상을 꼼꼼히 살핀다. 이들의 이론은 단순한 경제, 정치사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대중의 현실과 정신을 지배하는 기획이다. 그것은 “연합한 과두 지배자들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으로 정의되는 '내전'을 통해, 우매한 다수의 대중에게 그 어떤 결정권도 절대 넘길 수 없다는 '대중 혐오'를 통해, 적을 처단하기 위한 '법을 이용한 지배'를 통해 현실화된다.

    책에서 분석한 신자유주의의 이론과 전략들은 직설적이고 선명하다. 이 뚜렷함은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강렬한 이해로 다가온다. 현실 정치의 무책임한 난도질,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유해한 순진함이 아니라 명확한 의도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두려움을 몰고 온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지배 당하고 있는가.

3.82024
  • 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지은이), 김윤하 (옮긴이) | 은행나무 | 2024년 2월 "19세기 보스턴, 격변하는 시대의 초상"

    미국 남부 미시시피 출신으로 남북전쟁 참전자이자 강경한 보수주의자인 랜섬은 먼 친척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가 올리브의 초대를 받아 보스턴을 방문한다.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로 올리브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동행하는데, 이곳에서 여성의 고난에 대해 연설하는 버리나를 만나 동시에 호감을 느낀다. 랜섬은 버지나를 보고 한눈에 반했으며, 올리브 역시 그녀가 여성 해방의 첨병에 설 수 있음을 알아본 것이다. 버리나의 열띤 청혼자들과 그녀를 트로피처럼 내세운 부모를 피해 올리브는 버리나를 데리고 유럽으로 건너가고, 랜섬은 뉴욕으로 향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보스턴으로 돌아온 올리브가 이제 대의를 위한 전진만이 남아 있다고 믿던 어느 날, 랜섬이 보스턴에 돌아온다.

    돌봄과 연대감, 동지애, 로맨스에 기반한 두 여성 간의 관계를 일컫는 ‘보스턴 결혼’의 유래가 된 헨리 제임스의 중기 대표작. 여성 참정권 운동이 벌어졌던 19세기 보스턴을 배경으로, 올리브와 랜섬, 버지나의 기이한 삼각관계를 통해 남북전쟁 이후의 남부와 북부, 남성과 여성,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격변하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의 소설 중 정치적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유일한 작품으로, 당대에는 실존 인물을 연상케 하는 작중인물과 보스턴이 품었던 진지한 열의를 희화했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실적으로 관조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중기를 대표하는 실험적 소설로 남았다. 최근 세계적으로 진보적 사회운동이 퇴조하는 국면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페미니즘의 투쟁에 공명하는 독자들이 놓칠 수 없는 작품. 당대의 혹평과 후대의 찬사를 받으며 한 세기 반을 살아남은 19세기의 고전을 이제 현재의 빛으로 다시 읽는다.

  • 버자이너
    레이철 E. 그로스 (지은이), 제효영 (옮긴이)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과학, 더 잘할 수 있지 않습니까?"

    과학은 동시에 도달하지 않는다. 개인이 인공위성을 쏘고 인공지능이 운전을 대신해 주는 미래가 현실이 되었지만 지구인의 절반은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생리통에도 처참히 패배한다. 남성의 생식기에 관해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여성의 생식기는 무관심의 장막 안에 숨겨져 있었다. 책에 나온 어느 과학자의 말마따나 "보려고 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여성의 몸은 그 능동적, 수동적 무관심에 의해 과학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자신의 질염을 계기로 여성의 몸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여성 3명 중 1명에게 질염이 발생하지만 현대의 과학은 아직 질 분비물의 구성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질염의 치료는 붕산을 써서 질 미생물 생태계를 망가뜨려버리는 식의 고전적 의학 기술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문제다. 저자는 의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여성 생식기에 관련한 이야기와 연구를 모은다. 그는 학계의 뿌리 깊은 성편향과 여성의 몸을 둘러싼 수치심, 오명, 침묵을 파헤치는 동시에 여성의 몸을 완전히 새롭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과학자들을 만난다.

    주제는 새롭고, 내용은 흥미롭고, 서술은 매끄럽다. 여성의 몸에 대한 과학의 무책임함, 그리고 그 무책임에 대한 한 여성의 호기심이 서로 얽혀가며 통쾌한 에너지를 뿜는다. 그간 여성의 몸은 우주보다, 심해보다 깜깜했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여성의 몸에 덧씌워진 어떠한 신비로움도 거부한다. 여성의 몸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동시대의 과학이다. 2024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의 몸과 정신에 추천하는 책.

  • 때로는 간절함조차 아플 때가 있었다
    강지영 (지은이) | 빅피시 | 2024년 3월 "나를 믿고 의연하게 나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jtbc 뉴스룸 주말 단독 앵커, 유퀴즈 화제의 인물, 고나리자 진행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아나운서 강지영의 첫 번째 에세이가 출간됐다. 아나운서가 되기까지의 지난했던 과정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그녀를 잡아준 단단한 생각들을 솔직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 난관들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겨내는가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시련들을 이겨낸 한 사람의 기록이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다.

  • 지렁이의 불행한 삶에 대한 짧은 연구
    노에미 볼라 (지은이), 김지우 (옮긴이) | 단추 | 2024년 2월 "지렁이를 함부로 밟지 마시오."

    지렁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별로 없을 것이다. 지렁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아마도 징그럽다 (50%), 아무 생각 없다 (40%), 낚싯밥 (8%), 귀엽다(1%), 가엾다 (1%)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 비 온 후 다음 날엔 심심치 않게 목격되지만 이 생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런 지렁이에게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 3인. 첫째로는 찰스 다윈이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은 장장 40년 동안 지렁이를 연구했지만 학계에서조차 별달리 관심을 주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무민을 탄생시킨 토베 얀손이다. 그는 길거리에 두 동강 난 지렁이를 보고 머리와 꼬리를 생각한다. 그 누가 지렁이에게도 꼬리가 있다 생각했겠는가? 세 번째로는 이 책의 작가 노에미 볼라이다. 감각 있는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 작가는 지렁이만 생각하다가 결국 '지렁이의 불행한 삶에 대한 짧은 연구'라는 긴 제목의 규정하기 어려운 책을 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과정에 맨 처음엔 호기심이 있다. '이 생물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관심에서 시작된 지렁이 탐색기는 지렁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삶의 은유이기도 하다. 지렁이로 태어나 "이대로 사느니 차라리 신발 끈이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될 수 없다. "다른 무엇이 되는 상상을 하며 돌멩이가 되려다 불행히도 감기에 걸린 지렁이"를 보면 실소가 터진다. 그리고 일순간 지렁이는 결국 지렁이일 뿐이구나 깨닫고야 만다. 이 문장엔 어떠한 비하나 안타까움이 없다. 지렁이는 그저 지렁이일 뿐이다. 이 당연한 명제의 의미를 평생 찾아 헤맬 모든 인간 동료에게 바친다.

3.122024
  • 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지은이), 이종인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물질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이는가"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우리가 탈물질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니까. 저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금을 채굴하기 위해 산을 통째 날려버리는 광경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결혼반지에 들어간 금을 채굴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광석이 필요한지 궁금해하게 되었고, 이윽고 우리의 현실 세계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추적한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완성품들, 그것이 어떤 자원으로부터 어떻게 채굴되고 제작되어 현실에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굳이 관심 가질 계기가 없으니 생각을 해 볼 일도 딱히 없다. 그러나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리는 여전히, 아니 갈수록 더 완전한 물질의 세계에 살고 있다. 책에서는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여섯 가지 물질을 현대 사회의 필수 요소로 정리하고 이 물질들이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 모래는 반도체의 핵심 재료이고 의약품엔 소금이 필수적이며 구리가 없다면 세계의 전기는 멈춘다.

    나의 세계와 관련이 없다고 여길 때, 물질의 이름들은 사실 조금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세계의 유물이라고 생각한 물질들이 여전히 내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동안,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이 변하며 새로운 재미가 조금씩 끓어오른다. 현실을 감각하는 새로운 눈을 뜨고 싶은 독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 고잉 홈
    문지혁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초급 한국어> 문지혁의 귀향-소설"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시리즈의 문지혁 소설집. 뉴욕에서 외국인에게 기초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에서 대학 신입생들에게 교양 글쓰기를 가르치던 강사 '문지혁'이 등장하던 오토픽션의 정서가 소설집 전반에 흐른다. 대체로 그들은 꿈꾸는 중이고, 꿈꾸던 삶을 '체이스'(chase)하느라(2010년 소설가 문지혁이 발표한 첫 작품의 제목은 <체이서>였다.) 길을 오간다. 네모반듯한 맨하탄을 걷든, 뉴욕에서 플로리다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든, 서울과 뉴욕을 비행기 항로를 따라 이동하든 그들은 정착하지 못한 채 좌표 위를 오가는 중이다.

    <파친코>, <미나리>, <패스트 라이브즈> 같은 한국계 창작자들의 이민자 서사, 디아스포라를 다룬 작품이 소개되어 공감과 지지를 얻는 요즘이다. 정확히 같은 상황을 경험해본 적은 없을지라도 집을 떠난 이의 쓸쓸함에 대해서라면 소설을 읽는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우리도 이런 곳에 놓여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임종을 앞둔 장인 이호철을 만나기 위해 뉴욕발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사위의 비행기 좌석.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 추운 뉴저지를 벗어나 첫 결혼기념일을 플로리다에서 보내기로 한 유학생 부부가 방문한 수상한 호텔 13층. (<핑크 팰리스 러브>)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악명 높은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와 함께 보내고 겨우 한 끼를 먹기 위해 들른 쓸쓸한 다이너. (<나이트호크스>) '가로세로 반듯한 길에서조차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141쪽)들은 길 위에서 두리번대다 우리가 놓인 위치를 겨우 가늠해 '고잉 홈'하기 위해 방향을 조정한다. 이 여행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바라며 여행가방에 챙겨 넣기 좋은 소설집. 160쪽의 '골드 브라스 세탁소'의 깨진 간판 글자처럼, 길을 떠난 모든 이들의 행운을 빈다.

  • 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은이), 최고은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히가시노 게이고 2024년 최신작"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가미오 마요는 까다로운 노부부 고객이 의뢰한 리모델링 계약의 최종 마무리를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계약 취소를 통보받는다. 여러 차례 시안 재수정을 거치며 어렵사리 진행해 온 계약이 마무리 단계에서 어그러져 혼란스러워하던 마요는 사무실로 복귀하던 도중 의뢰인이었던 도미나가 부인의 전화를 받는다. 도미나가 부인은 마요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사과하는데, 실은 부부가 리모델링하여 들어가 살려고 했던 집이 죽은 아들의 전처에게 통째로 넘어가게 된 상황이었던 것. 아들의 전처가 아들의 사망 이후 기다렸다는 듯 가족 앞에 나타나 배 속 아이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노부부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 마요는 사정을 삼촌 다케시에게 털어놓고, ‘블랙 쇼맨’ 다케시는 도미나가 부부의 법률 대리인이 되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괴짜 페르소나 ‘블랙 쇼맨’ 시리즈의 신간. 도쿄 시부야구 에비스에 위치한 작은 바 ‘트랩 핸드’의 마스터 가미오 다케시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곤란에 빠진 사람들에게 특유의 관찰력과 논리력으로 도움을 주는 세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건이 해결된 뒤 한 잔씩 내어지는 색다른 칵테일도 함께다. 출간 도서 누계 판매 부수 1억 부, 에도가와란포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본격미스터리대상 등 일본 대표 문학상을 모조리 석권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최근 가장 애착을 보이는 시리즈로, 작가가 “지금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캐릭터”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
    이하영 (지은이) | 토네이도 | 2024년 2월 "내 삶에 대한 확신, 이것이 시작이다"

    2015년 10월 4일 저녁, 4개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6개월, 12개월, 5년, 10년 후의 미래의 자신에게 말을 건 한 남자, 바로 현재 개인 유튜버 구독자 수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지미 도널드슨, 유튜버 '미스터비스트'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꿈을 향해 용기를 내어 작성한 그 영상은 그의 인생에서 완전한 전환점이 됐다. 꿈을 실현해야 한다는 무게감은 그를 압도했지만 미래를 현재의 나와 연결시킴으로써 그는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에 대한 확신' 이것이 극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

    우연히 출연한 유튜브 영상이 500만 뷰를 돌파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이하영 병원장'이 꿈과 성공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제시하는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가난을 이기고, 상위 1% 부를 이루기까지, 성공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식을 뒤집는 '원하는 미래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법'을 소개한다. 특히 '열심히'라는 중독에서 벗어나 '충실히' 시간을 보내고, 나아가 '즐겁게' 살면 최고라고 강조하면서 미래를 향해 몰입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말한다. "극적인 변화의 시작은 '내 삶에 대한 확신'이었다."라고.

3.152024
  •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에드워드 브룩-히칭 (지은이), 최세희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24년 3월 "이토록 괴상한 책들의 세계"

    물욕이 죄 책으로 쏠려버린 사람에게도 이런 고민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가장 갖기 싫은 책을 줄 세워보고 있었다. 인피 제본 책? (맞다. 인피는 인간의 피부이다...) 사담 후세인의 피 27리터로 쓰인 책? (한 공간에 잠시 머무르고 싶지도 않다.) 악령의 무리가 부르는 대로 수녀가 받아쓴 암호 편지? (끝내 저항하고 멈춘 것이 다행이랄까.)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이려나?(눈알의 고통, 더는 참을 수 없다.) 혹은 인간보다 크고 무거운 책이려나?(나에겐 내 작고 귀여운 집을 지킬 의무가 있다.)

    세상의 괴상한 책들을 그러모아 소개한 책, 이 짧은 소개만으로 애서가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눈을 의심하면서도 책장은 끊임없이 넘어간다. 희귀서적상인 부모를 두고 책으로 지은 집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자는 이 분야에 도가 텄는지 정말로, 정말로 이상한 책들의 이야기를 샅샅이 모아 들려준다. 그리고 이 괴이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인간에게 책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책에 담긴 무수한 욕망들, 사정없이 선을 넘는 콘텐츠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제각기 가질 수 있는 특성들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어떤 파괴력... 아무래도 책은 끝 간 데 없이 위험한 것이 맞고 그만큼 매혹적이다.

  • 샤이닝
    욘 포세 (지은이), 손화수 (옮긴이) | 문학동네 | 2024년 3월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 최신작"

    지루함에 압도당한 ‘나’는 무작정 차를 몰고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계속해서 차를 몰다가 바큇자국이 점점 깊이 파이는 숲길로 접어들어서야 어느 순간 차가 길바닥에 처박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를 돌릴 수도, 후진으로 빠져나올 수도 없다. 도움을 청할만한 곳도 없고, 하늘에선 눈이 내린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숲속으로 걸어간다. 피로와 추위, 배고픔이 엄습하는 가운데 ‘나’의 눈앞에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것은 사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것이 사람일 리가 없다. 밝은 빛을 내뿜는 순백색의 형체가 나’에게 다가온다. 과연 지금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0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최신작. 작가 데뷔 40주년인 2023년 발표한 소설로, 8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본문 속에서 의식 그 자체처럼 흘러가는 물음표 없는 질문들로 작가가 오래도록 천착해 온 삶과 죽음의 문제, 그 문턱에 놓인 한 인간의 내면과 기이한 체험을 묘사한다. 그의 문학세계의 결정적인 특징이 모두 망라된, 가장 쉬운 단어로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수작. 많은 매체의 평가처럼 욘 포세의 작품에 다가가기 위한 입문서가 될 책이다. 스웨덴 아카데미 노벨재단의 동의를 구해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을 함께 실었다.

  • 사고뭉치 소방관 오케이 1
    강효미 (지은이), 김경희 (그림) | 길벗스쿨 | 2024년 3월 "OK! 다시 해보지 뭐!"

    수많은 어린이 독자는 물론, 어른 독자마저 사로잡은 <똥볶이 할멈> 시리즈, 강효미 작가의 신작 시리즈가 나왔다. 어릴 때는 열심히 한다고 해도 서툴고 실수투성이였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이상하게도 자꾸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더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시리즈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똑 닮은 주인공, 사고뭉치 소방관 '오케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평화로운 구름시에는 소방서가 딱 하나 있고, 그곳의 유일한 소방관은 '오케이'다. 그리고, 오케이 곁에서 때로는 오케이를 돕기도 하고, 때로는 비웃기도 하는 짓궂은 소방새 '루이'도 있다. 의욕에 넘쳐 허둥지둥 일에 뛰어들지만 해결은커녕 실수만 하는 오케이.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아 울적해진 오케이는 사직서를 내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소방관이었던 엄마의 유품 라디오, 그것도 30년 동안 작동하지 않았던 고장 난 라디오에서 속보가 나오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희한한 일들에 휘말리게 된다.

    없는 동물이 없는 '다있소 동물원', 40년 동안 꼬마 손님들을 대상으로 '구름 문구점'을 운영해온 할머니의 사연... 등장인물과 동물, 장소, 여러 에피소드, 엉뚱한 상상을 좋아하는 작가가 만들어낸 요소 하나하나가 흥미를 유발하여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든다. 오케이가 사직서를 찢어버리고, 'OK! 다시 해보지 뭐!' 마음을 다잡아 가는 뭉클한 과정도 잘 담겨 있다. 책의 마지막은 시장의 쿰쿰한 음모 계획이 루이에 의해 포착되며 끝난다. 책장을 덮는 순간 후속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매력 넘치는 이 책을 많은 어린이, 어른 독자와 함께 읽고 싶다.

  • 감정 호텔
    리디아 브란코비치 (지은이), 장미란 (옮긴이) | 책읽는곰 | 2024년 2월 "내 마음이 쉬다 가는 곳"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짜증나". 이 말은 마법의 단어처럼 온갖 감정들을 다 포함한다. 배고프다 대신에 짜증나, 피곤해 대신에 짜증나, 불안해 대신에 짜증나,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짜증나. 작았던 짜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두꺼운 먹구름처럼 머릿속을 지배한다. 이 먹구름을 없앨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가만히 마음과 머릿속을 들여다 봐야한다. 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책 속 '감정 호텔'은 이렇게 뭉뚱그려지는 감정들을 위해 존재한다. 내가 느끼는 이것이 분노인지 수치심인지 슬픔인지 확인하고 알맞은 방에 넣어주어야 한다. 작가는 위트 있는 글 솜씨와 그림으로 내 감정에 이름 붙이고 관리하는 법을 은유로 보여준다. 차근차근 지배인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더 풍부한 단어로 화려하게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내 마음속 '감정 호텔'에서 가장 조용한 방문을 열어 '감사'가 잘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3.192024
  • 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은이), 송병선 (옮긴이) | 민음사 | 2024년 3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매년 8월 16일이 되면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글라디올러스 한 다발을 놓기 위해 카리브해의 섬을 방문한다. 소금기로 부식된 낡은 택시를 타고 항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공동묘지를 찾아 야외 시장에서 산 꽃다발을 어머니의 무덤에 올려놓고 나면, 그 순간부터 다음 날 여객선이 출발하는 아침 9시까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그해 여름도 예년과 마찬가지였다. 호텔 방에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다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호텔 바에서 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라벤더 향을 풍기는 남자와 함께 보낸 밤이 지나고 돌아오는 여객선에서, 아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결코 예전과 똑같은 여자로 돌아갈 수는 없으리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백년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이 그의 사후 10주기인 2024년 3월 6일, 마르케스의 생일에 전 세계 동시 출간되었다. 매년 8월 반복되는 여행으로 자신의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을 마주하는 주인공을 통해 마르케스는 사회와 가족, 규범과 구속에서 벗어나 있는 힘을 다해 계속해서 그녀 자신이 되려고 하는 여성을 그렸다. 책에는 작가의 유고를 출판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짐작게 하는 ‘프롤로그’, ‘편집자의 말’, 옮긴이 송병선 교수의 ‘작품 해설’ 함께 마르케스의 자필 교정 흔적을 볼 수 있는 영인본 네 페이지도 함께 실려있다. 작가 사후 10년 만에 찾아온, 마르케스가 남긴 뜻하지 않은 선물 같은 소설.

  • 찾기 대장 김지우
    장희정 (지은이), 김무연 (그림) | 비룡소 | 2024년 3월 "제13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처음이 어려운 아이를 위한 책"

    비룡소 문학상은 매년 저학년 어린이들을 위한 의미 있는 작품을 선정해왔다. 역대 수상작으로서 큰 사랑을 받아온 <한밤중 달빛 식당> <꽝 없는 뽑기 기계> <오리 부리 이야기> 등에 이어 제13회 당선된 작품은 장희정 작가의 <찾기 대장 김지우>다. 이번 책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지우의 이야기와 짧은 분량의 선호 이야기 두 편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지우는 처음으로 홀로 등교하는 날을 맞이한다. 누구에게든 뚝딱하고 물건을 잘 찾아주는 '찾기 대장' 지우는 자꾸 준비물을 빠트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몇 번을 집에 들락날락한다. 더욱이 아래층 할머니의 잃어버린 강아지, 어느 유치원 아이의 신발을 찾아주느라 학교까지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만다. 뒤늦게 학교에 간 지우는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며 기다린 사실을 알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선호는 비 오는 날 학교 화장실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는다. 결국 비 오는 날 화장실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던 친구 유준이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린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심리치료와 상담을 해온 작가는 처음 학교 가는 일, 처음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려운 지우와 선호를 통해 '처음' 앞에 선 아이들의 두렵고 떨리고 불안한 마음을 잘 담아낸다. 김무연 작가의 깜찍한 그림이 더해진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전개와, 처음이 어려운 아이들을 안심시키는 따스하고 귀여운 결말도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든다.

  • 야망계급론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지은이), 유강은 (옮긴이) | 오월의봄 | 2024년 3월 "새로운 계급의 탄생"

    기존의 계급론들은 빛을 잃었고 이 시대의 계급 현실에 대해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자리는 비어 있다. 이 연구는 아마도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지 않을까. 공공정책학 교수인 저자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은 현대 소비 문화의 분석을 통해 계급 개념을 새롭게 살피고 부유층, 엘리트들이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새로운 수단을 밝혀낸다. 이른바 "야망계급"의 등장이다.

    야망계급이란 누구인가. 책에서 공들여 쌓은 긴 설명을 투박하게 축약하는 실례를 무릅써보자면, 이들은 기존의 이론들에서 계급을 구분 짓는 결정적 요소인 경제 자본과는 (표면적으로) 거리가 있다. 이들을 묶는 공통 요소는 '지식'이다. 많은 시간을 쏟아 만든 지식, 지식으로부터 형성된 교양, 사회와 환경을 고려하는 가치관 등이 이들을 다른 이들과 구분 짓는다. 야망계급은 과시적 소비엔 크게 관심 없다.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꾸밈 취향, 대화 속에서 인용했을 때 "통하는" 칼럼니스트의 이름, 진정성 있다고 여겨지는 친환경 식료품 구입 등 이들이 스스로를 구분 짓는 요소들은 큰돈이 들지 않아 소박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간단해 보이는 정보들에 접근하기 위해선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이너서클의 기표를 읽을 수 있는 지식수준, 정보를 얻기 위한 긴 시간과 노력,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상당한 금전적 비용. 그러니까, 이들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만들어가는 전략은 한층 은밀하고 교묘해진 것이다. 저자는 이 은밀함이 계급 격차를 더욱 확실하고 크게 벌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야망계급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구체적으로 통찰력 있다. 이 책의 도드라지는 장점은 어떤 느낌이나 감정으로 떠다니던 현실을 선명하게 가시화한다는 점이다. 소득별 소비를 분석하여 비과시적 소비, 비가시적 소비를 나누는 설명 방식은 취향이나 생활 방식에 관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짚어준다. 이너서클의 문화에 대한 예시와 분석 또한 마찬가지. 굉장히 흥미롭고 현실적인, 이 시대의 계급론이다.

  • 몰입의 기술
    이윤규 (지은이) | 더퀘스트 | 2024년 3월 "몰입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몰입의 사전적 개념은 '어떤 일에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몰입을 한 번씩은 경험해 왔다. 숫자, 공룡, 자동차, 태양계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종류부터 이름, 특징 등을 백과사전처럼 외운 적이 있을 테니 말이다. 몰입이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경험은 점차 성장하면서 언제가 다시 발현하여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뇌는 지난 '몰입의 기억'을 분명 간직하고 있으리라. 지금은 잠깐 숨어있을 뿐. '몰입'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40만 구독자가 인정한 공부법 유튜버 이윤규 변호사가 알려주는 '몰입하는 삶'을 위한 유용한 안내서. 저자는 많은 이들이 '몰입'을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의지나 노력,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효과적인 방법을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몰입이란 '뇌에 몰입의 대상을 팔고, 뇌는 인지적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라고 비유하며, 뇌가 몰입 대상을 사게(buy) 만들라고 제시한다. 뇌를 상대로 마케팅하라는 것. 저자가 말하는 몰입이 작동하는 원리와 그 구체적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자. 몰입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음을.

3.222024
  • 원도
    최진영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구의 증명> 최진영 세계의 입구"

    2010년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진영이 2013년 발표한 장편소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짧게 독자를 만난 후 절판되었다. <구의 증명>(2015)이 20여만 부가 판매되며 조용한 베스트셀러가 된 2020년대에 최진영의 세계에 새로이 입장한 독자들은 중고책으로라도 서너 배의 값을 치르고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만나기 위해 서성였다. 바로 그 소설이 11년 만에 초고 파일명이었던 <원도>라는 제목으로 독자의 곁에 돌아왔다.

    죽음을 목전에 둔 '원도'라는 인물이 있다. 횡령과 사기, 탈세와 살인혐의를 달고 여관을 전전한다. 가족도 그를 여러 번 버렸고 세상 누구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골목길에 쓰레기처럼 놓인 처지로, 검붉은 피를 토하며 원도는 자신을 이곳으로 몰고 온 수많은 우연과 선택을 곱씹으며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되묻는다. '그 구멍으로 온 생이 콸콸 쏟아져 사라질 것'(30쪽)을 알면서도 기어이 삶의 이유를 되묻는 남자. 죽어 마땅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그의 악덕이 이어질수록 징글징글할 정도로 삶의 의지가 콸콸 쏟아진다.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음악 같은 문장은 그의 세계를 애호하는 독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하다. 자격 없는 삶도 마땅히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소설, 가차없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희미하게 빛이 내려앉는 듯한 소설이다.

  • 나라는 착각
    그레고리 번스 (지은이), 홍우진 (옮긴이) | 흐름출판 | 2024년 3월 "뇌가 이야기로 자아를 만드는 법"

    현대인이 가장 많이 듣는 주문 중 하나가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아닐까. 복잡한 세계, 나를 알아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시대의 외침이 온갖 미디어에서 메아리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해석하고 분석하고 고민하고 방황하고... 잠깐, 잘 생각해 보자. 스스로를 파악하기 위해 분석하는 대상은 대체로 '과거의 나'다. 우리는 과거의 나를 기반으로 분석한 자신에 자아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 통합성 위에 현재와 미래의 삶을 그려본다. 그런데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그 자아는 망상입니다."

    책은 우리의 자아라는 것이 어째서 뇌가 만들어 낸 허구인지를 과학으로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뇌의 인지 방식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세계를 이야기로 해석한다. 이야기의 형식을 거치지 않고서 뇌는 세계를 해독할 수가 없다. 어릴 때 듣고 경험한 이야기는 우리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스키마로 자리 잡고, 우리는 그 틀 위에서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이야기를 편집하여 자아를 만들어낸다. 물론 기억이란 완전치 않기 때문에 제멋대로 어떤 부분은 강화하고 어떤 부분은 삭제한, 왜곡된 상태로. 여러 실험과 예시, 이론을 근거로 들며 책은 찬찬히 뇌가 자아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알려준다.

    그러면 어쩌란 말일까. 지금껏 형성해온 자아가 망상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토대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대체 누구인가. 저자는 이에 대한 답까지 친절히 준비해두었다. 뇌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활용하여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이라 읽는 동안 간간이 어지러워지겠지만, 나라는 인간의 삶의 콘셉트에 발목 잡힌 적 있는 이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을 줄 책이다.

  •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세트 - 전2권
    프랭크 허버트 (지은이), 박미영, 유혜인 (옮긴이) | 황금가지 | 2024년 2월 "<듄>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1920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태어난 프랭크 허버트는 스무 살 무렵이던 1936년부터 기자, 사진사, 뉴스 해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1952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스타틀링 스토리스’에 첫 SF 단편 <뭔가 찾고 계신가요?>를 발표한 이후, 1955년에 첫 장편인 <바다의 용>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첫 장편 출간 이후 수년 여 동안 오로지 하나의 작품에 몰두하여 이전까지 없었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3년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에 발표한 하나의 단편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2년 뒤 두 번째 장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 작품은 휴고상과 네뷸러상의 장편 소설 부문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바로 <듄>의 탄생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SF소설 <듄>의 작가 프랭크 허버트의 단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그의 첫 번째 단편 <뭔가 찾고 계신가요?>로 시작하여 <듄>의 유일한 단편인 <듄으로 가는 길> 등 1952년부터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985년까지 30여 년 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된 32편의 단편을 담았다. 수록작 중에는 <듄> 시리즈의 주요 개념들의 실마리가 엿보이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베네 게세리트의 개념을 처음 선보인 <건초 더미 작전>(1959)이나 <듄> 후반부 주요 소재인 유전을 통해 전이되는 기억을 처음으로 다룬 (1965)등은 ‘듀니버스’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외에도 SF의 틀 안에서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드는 단편들을 통해 작가의 독창적인 설정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괜찮은 오늘을 기록하고 싶어서
    차에셀(빵이) (지은이) | 로그인 | 2024년 3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

    '00년 00월 00일. 해가 구름을 이긴 날'. 나는 가끔 우리 집 아이가 어릴 때 써두었던 일기장을 보곤 한다. 차곡차곡 모아 놓은 일기장은 아이의 성장 과정을 담은 기록이나 마찬가지여서 가끔씩 펼쳐보는데, 곳곳에 내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 보기도 한다. '이때 나는 이랬구나'

    * 기록(記錄) : 주로 후일에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생각해 보면 나는 하루에도 무수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메일, 메신저, SNS 등을 통해 나의 흔적들을 남기고 있으니. 여러 이유로 가끔 지난날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 공간,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나의 모습들을 보면서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 내리라.

    쓰는 사람 '빵이'의 기록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수없이 지나쳐가는 나의 오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며, 기록하며 삶이 완전히 새로워지지는 않았지만 기록을 통해 점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100권이 넘는 노트에 기록하며 쌓아온 기록하는 법과 기록을 계속하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공개한다. 더불어 저자가 직접 만든 템플릿까지. 수년간 매일을 기록을 SNS에 공유하고, 기록하는 틀을 제공하면서 '왜 기록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는 저자는 그 답을 이렇게 말한다.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3.262024
  • 알사탕 제조법
    백희나 (지은이)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24년 3월 "백희나가 그리는 알사탕 유니버스"

    한국인 최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하며 한국의 그림책을 전 세계에 알린 백희나 작가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수상하리만치 작은 이 책은 처음 받으면 놀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로로 엄숙하게 쓰여진 '알사탕 제조법'을 눈으로 읽으면, 옳다구나! 이건 제조법이니까 들키면 안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스리슬쩍 주머니에 쏙 넣는다.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꺼내서 꼼꼼히 읽어보자.

    국내외 그림책 독자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은 <알사탕>의 세계관을 이어가는 이 책은 간절한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알사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절차탁마 해야하는 지 알려준다. 나도 요가 꽤나 했지만 두루미 자세나 왕비둘기 자세는 하지 못한다. 역시 알사탕 만들기는 쉽지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낙심하지는 말자. 곳곳에 퍼진 미래의 알사탕 제작자들이 기필코 도움을 줄 테니!

  • 프리 웨이
    드로우앤드류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3월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키우고 싶나요?"

    한 속담 중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다. 걱정만 해가지고 해결될 문제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사실 걱정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대부분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걱정은 걱정이라고 생각해서 걱정이었을지 모른다. 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보자. 우리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자기계발러' 드로우앤드류의 2년 만의 신작. <프리 웨이>는 세상이 말하는 정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인생길'을 달려온 저자의 여러 순간들을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인생의 향방을 모색하고자 택한 해외 생활에서 얻은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 결정하는 태도'였다며, 다른 사람의 지시대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일과 삶을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지금 당신이 겁이 나고 뒤쳐질까 봐 머뭇거리고 있다면 지금의 '드로우앤드류'를 만든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주목해보자. "FREE WAY"

  • 돌봄, 동기화, 자유
    무라세 다카오 (지은이), 김영현 (옮긴이) | 다다서재 | 2024년 3월 "조한진희, 홍은전 추천"

    저자는 일본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수많은 노인을 돌보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산뜻한 문체로 풀어 놓는다. 산뜻한 문체는 대체적인 일서의 특징이긴 하지만 이 책에선 특이하게 도드라진다. 노인 돌봄이라는 주제가 가진 묵직함과 비릿함에 비해 그의 반응과 분석이 깔끔하고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경솔하다거나 진지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고통의 프레임이나 거북한 감정 과잉, 혹은 냉철한 분석의 눈도 없이 저자는 단단한 생활형 인간으로서 현실을 본다. 그 눈엔 적당한 호기심과 적절한 애정이 서려있다.

    그가 바라보는 돌봄노동은 본질적으로 양방향적이다. 돌봄 노동이라는 행위를 사이에 끼고 돌봄은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를 일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만 여긴다면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생명과 생명이 서로 시간과 감정을 쏟으며 함께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양쪽 모두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감정이나 깨달음과 같은 부산물이 생긴다. 저자는 돌봄의 양방향성에 관하여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오직 현장에서만 길어올릴 수 있는 깨달음의 언어다. 이 진지하고 산뜻한 책은 현실의 노화와 돌봄을 새롭게 감각하게 한다.

  • 다 하지 못한 말
    임경선 (지은이) | 토스트 | 2024년 3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

    <사랑의 단상>의 저자 롤랑 바르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un amour inexprimable)'이라는 표현으로 사랑이라는 것의 모양을 굳이 말로 세공하려는 이의 불가능성을 논했다. 말이 늘어날수록 나의 말은 내 사랑의 고유한 모양과 멀어지고, 곤혹스러운 자리엔 '다 하지 못한 말'만 남는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호텔 이야기> 임경선이 사랑이 남기고 간 황홀한 고통을 회고하는 소설로 돌아왔다.

    단정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에 능숙한 직장인인 '나'는 피아니스트인 '당신'이 연주하는 사랑의 선율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나이스한 직장인과 취향 좋은 예술가의 어른스러운 관계는 곧 정념으로 흐트러러지고, 이들은 처음 사랑해보는 사람처럼 실패한다. 프리다와 디에고, 슈만과 클라라와 브람스의 사랑 이야기처럼 이 소설 속 사랑에도 판단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잘못된' 사랑 이야기에서 위로받을 것이고, 임경선의 소설은 꼭 그 사람을 향한다. 사랑이 스치고 지나가 깊게 패인 자국을 기억하는 사랑주의자들을 습기 어린 문장이 변호한다.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문장, 격정적인 피아노 음률과 함께 사랑을 겪기 좋은 봄이 온다.

3.292024
  •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3월 "김창완과 함께한 23년의 아침들"

    2024년 3월 17일을 마지막으로 23년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은 SBS 파워 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주옥같은 오프닝 멘트를 모아 놓은 책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가 출간되었다. 매일 아침 9시, 다정하고도 조금은 무심한 톤으로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김창완 '아저씨' 덕분에 많은 이들이 고단한 세상 살이를 위로받고 또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이 얻곤 했다.

    그와 애청자들이 함께 그려왔던 이야기는 아쉽게도 막을 내렸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창작자로서, 배우로서,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아직도 힘든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그가 전해준 따스하고도 담백한 말들은 이제는 책 속 문장이 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가장 김창완다운, 아날로그 감성의 위로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그의 선물이다.

  • 벚꽃 수영장
    신현경 (지은이), 노예지 (그림) | 북스그라운드 | 2024년 3월 "야호 마을 야옹이들의 봄 수영 교실"

    2023년 여름, <야옹이 수영 교실> 시리즈의 첫 권이 출간되었다. 언제 보아도 어디를 보아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인 고양이, 그렇지만 물을 굉장히 싫어하는 고양이가 수영한다는 신선한 설정 아래 귀여운 이야기와 그림을 듬뿍 담은 그 책은, 단기간 내 베스트셀러로 올라섰을 뿐 아니라,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등,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첫 권 이후의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린 독자들을 위해 봄 수영 교실로 다시 돌아왔다.

    기후 위기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 물과 많이 친해진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첫 권은, 야호 마을로 새로 이사 와 수영 코치가 된 하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남긴 채 끝난다. 과연 하오 코치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이번 책에서 속 시원하게 풀린다. 수영장에서 벚꽃 흐드러진 호숫가로 배움의 영역을 확장해 새롭게 도전하는 올망졸망 고양이들을 만나는 기쁨까지, 더 재미있고 풍성한 이야기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 개욕탕
    김유 (지은이), 소복이 (그림) | 천개의바람 | 2024년 3월 "마음까지 씻고 가'개'"

    학교를 마치고,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진이 다 빠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밖을 나선 그 순간 그대로 나의 방은 멈춰 있다. 나만 바깥에서 많은 먼지와 많은 말들과 많은 부대낌을 굳이 집까지 가지고 왔다. 어떻게 털어버려야 할까. 개욕탕에 다녀온 강아지가 내게 일러준다. 그런 것들은 소위 수용성이라고 하니 씻어 내라고. 가뿐하게, 깔끔하게, 목욕탕에 다녀온 자기처럼.

    못생겼다고 놀림받은 개, '개'를 붙여 욕하는 소리를 들은 개, 늙은 개, 엄마 개와 강아지. 모두 모여 한밤중 개욕탕으로 모인다. 뜨끈한 탕에서 몸을 녹이며 하루의 고단함도 녹인다. 나쁜 생각들을 지우려는 듯 거품을 마구 문지른다. 김 서린 거울에 나쁜 말들을 쓰고 지운다. 목욕탕 한편에는 마음까지 씻고 가라 적혀있다. 행여나 제일 중요한 걸 놓치기라도 할까 봐.

    <마음버스>, <사자마트>를 통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김유, 소복이 작가가 다시 모여 <개욕탕>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의 매력은 글과 그림이 별개지만 유기적인 스토리를 가진다는 것에 있다. 글을 따라 그린 그림이 아니라 글을 확장시키는 그림, 그림을 확장시키는 글과의 긴밀한 호흡이 그림책의 완성도를 높인다. 전작에서 호흡을 잘 맞춰온 듀오가 이번에도 고른 숨으로 만든 이 책은 목욕 후 시원한 요구르트를 먹는 것 같이 깔끔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게 해줄 테다.

  • 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지은이), 구소영 (옮긴이) | 다산북스 | 2024년 3월 "소비자의 감정에 주목하라!"

    오늘날 우리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행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환상일 뿐이다.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감정'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은 생각과는 다르다. 내 책상, 옷장, 신발장을 한번 들여다보자. 여러 물건 중에서 정말로 필요해서 산 것들이 얼마나 될까? 1+1 행사를 해서, 그냥 예쁘니까, 한정판이니까! 우리의 구매 결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엔 항상 '감정'이 개입을 한다. 바로 여기에 마케터라면 누구나 알고 싶었던 '왜 팔리는가'에 대한 답이 숨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감정을 통해서만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는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소비를 하는 것은 모두 '감정'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있는 감정을 강화하는 마케팅 즉, 신경 마케팅을 하면 그토록 바라왔고 꿈꿔왔던 폭발적인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애플, 나이키, 코카콜라 등 수많은 기업들이 이 마케팅 기법을 채택한 이유다. 이 책은 실무 중심으로 쓰여 현장에 바로 대입할 수 있고, 새로운 마케팅 도구를 갈망하는 마케터들에게 귀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불황과 상관없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싶거나 매번 성공하는 마케팅 공식을 찾고 있다면 <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구매를 망설이고 있는가? 장바구니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잠들기전 배송, 게다가 무료배송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