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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9,600원, 205권 펀딩 / 목표 금액 2,000,000원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로 출간되었습니다. 
  • 2023-08-16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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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인 수녀, 정혜윤 PD 강력 추천 ★★★
삶의 모든 결을 롱테이크로 관찰하는 작가 김달님
『나의 두 사람』 이후 한층 깊어진 기록,
세 사람의 삶이 한 사람 몫의 기억으로 남아 ‘특별한 다음’을 이야기한다


남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모든 삶의 결을 허투루 넘기지 않겠다는 듯 롱테이크로 관찰하는 작가 김달님의 에세이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가 미디어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아주 특별한 가족 서사를 풀어내며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던 그가 이번에는 살면서 맞닥뜨린 상실과 아픔에 무너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 기대어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가는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지난 계절, 김달님은 두 사람을 떠나보냈다. 최선을 다해 서로를 책임져온 이야기로 큰 사랑을 받았던 책 『나의 두 사람』의 주인공 1939년생 김홍무 할아버지, 1940년생 송희섭 할머니가 두 달 간격으로 연달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례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통화 기록에 남은 할아버지의 부재중 전화, 벽에 붙은 할머니 사진을 보고 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눈물도 나지 않고 문이 닫힌 아주 고요한 방에 남겨진 듯했다. 그럴 땐 세상이라는 것이 아주 멀고 불투명하게 느껴졌”고 생(生)이 이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가장 납득할 수 없던 사실은 앞으로 다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망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 손을 잡아보았고, 할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것을 보았고, 흰 천이 덮인 몸을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았고, 다 타고 재가 되어버린 것도 보았고, 유골함을 묻은 땅이 뜨지 않도록 발로 여러 번 밟는 일도 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할아버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말이 될 것 같았다.” (129~130면 「우리 또 만나」 중에서)

가까운 존재를 잃고 나서의 상실감은 밀도 높은 슬픔과 공허함, 무서움으로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들도 있었다. 사는 일이 두렵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조언해주고,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고,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건네는 한 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려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포옹, 사람들의 말, 사람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결국엔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야 할 나의 삶이라는 것을.” (150~151면 「회복기의 노래」 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겨진 삶에서 상실과 애도의 시간을 통과하며 깨달았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달님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사랑이라는 유산이라는 것이었음을. 따뜻한 빛으로 반짝이던 세 사람의 삶이 한 사람 몫의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 기억이 일러준 온전한 사랑 덕분에 김달님은 ‘다음’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미처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경험했고 걸어보지 못한 길을 먼저 걸어준 존재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행복해지고 싶은 당신 곁의 소중한 사람들,
우리를 조금씩 자라게 하는 인생 이정표 당신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한 매거진의 에디터로 일하면서 김달님은 우리 곁에 있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3년 동안 백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특히 생기를 잃지 않고 날마다 자신의 일을 꾸려나가는 어른들이 있었다.
여든셋의 나이에도 매일이 새롭고 즐겁다는 영화 연구가, 청소 노동을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미화일기를 쓰는 67년생 치에코 씨, 열여덟부터 물질을 시작해 긴 세월 동안 경남의 푸른 진해 바다에서 슬픔도 기쁨도 파도에 실어 보내는 45년 경력의 해녀… 고달프고 굴곡진 세상살이도 덤덤히 받아들이며 한평생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온 어른들의 진득한 삶은 누군가를 앞서가지 않고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주어진 임무를 꾸준히 수행하는 것 또한 인생의 미덕이라 말해주었다.

“나는 그런 게 좋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어떤 삶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찾아오던 놀라움과 부끄러움. 그와 동시에 또렷하게 생겨난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87면 「잘 살아가세요」 중에서)

삶의 굽이굽이마다 마주하는 시련에 절망하지 않고 오늘도 꼿꼿한 태도로 살아가는 어른들이 인생의 현장에서 전하는 말 한 마디는 행복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기도 한다.

“지난밤엔 노트에 적힌 말들을 읽다가 어느새 내가 그 밤으로부터 조금씩 떠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단지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서만은 아니었다. 오직 나만이 알아볼 수 있을지라도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난 마음 덕분이었다. 슬픔이 긴 날들에도 다시 기쁠 수 있다고 믿는 마음.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될 거라고 조용히 희망하는 마음. 하루하루 다가오는 삶을 기꺼이 사랑해보자는 마음. 마음이 자라는 방향은 사람들이 내게 들려준 말들이 가리키는 곳이기도 했다.” (9면 「프롤로그」 중에서)

빛을 향해 줄기를 단단히 뻗는 식물처럼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좋은 삶을 향해 몸과 마음을 뻗는다. 그곳에는 가족뿐 아니라 친구, 주변 좋은 이웃어른들이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 사랑의 말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마음이 자라는 방향은 그런 쪽을 향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자란다.



차례


프롤로그

1부. 마음이 자라는 방향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치에코 씨의 정성스러운 일일
너에게 주고 싶은 것
미루나무 아니고 버드나무
우리의 비하인드
우리를 기다리는 다음으로
잘 살아가세요
자라는 손
지나와서 다행이야
백만분의 일의 확률
되게 하는 일
우리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야

2부. 사랑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이야기
우리 또 만나
갖고 싶은 기분
회복기의 노래
꿈에서는 가능해
꿈 밖에서도 가능해
차차 흐려지는 날에도
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그렇게 시작되는 글쓰기
거기에 가면 있는 사람들
대박 나면 잠수 타
오늘도 먼저 자는 사람
나를 향한 환대
모래사장도 바다니까
사랑하는 황금비율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제나 마지막에
끌어안는 삶

책 속에서


그렇게 웃는 동안 마음에 잔잔한 진동이 일었고 무언인가 부드럽게 새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여든 너머의 삶. 그 삶에도 여전히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나만 아는 기쁨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처럼.

“선생님은 하루하루가 심심할 틈이 없겠어요.”

함께 웃던 동료가 말했다. 선생님은 연일 술을 마시면 심심하지 않다는 농담을 한 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비결은 매일 새롭게 배우는 것이라 일러주었다. 그는 맨날 영화를 보는 것은 물론 언제나 머리맡에 책 다섯 권을 두고 잔다고 했다. 그중에는 젊은 작가가 쓴 책도, 오랫동안 좋아한 원로 작가의 책도 있었다. 그리고 매일 여섯 개 신문사의 신문을 정독하는데, 두 곳은 구독해서 읽고 나머지 네 곳은 단골 카페에 가서 읽는다고도. 그렇게 읽은 이야기 중에 재미있는 것을 골라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들려준다고.
“그럼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지.”
“뭐라고 하는데요?”
“승기야. 니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서 좋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건 서른에도, 마흔에도, 여든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다짐 같았다. 마침 그 밤은 새해가 되기까지 열흘도 남지 않은 날이었다. 다가오는 날들을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몇 번의 새해가 다가오든, 그때마다 나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내게 이 말을 일러준 사람의 나이가 나보다 마흔여덟 살이 많은 여든셋이었다는 사실을. 여든셋의 나이에도 여전히 매일 사랑하고 꾸준히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에서

“정성. 저는 정성이라는 말이 좋아요.”
“왜 그 말이 좋은가요?”
“정성에는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요.”

정성은 그날 치에코 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안에서 저절로 자라난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정성을 다하는 대상이 매일 반복되는 노동뿐 아니라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 그렇게 쌓여가는 자신의 삶이라는 점이 나의 한구석을 반듯하게 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그에게서 느껴지던 명랑한 기운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치에코 씨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 언제나처럼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건물 로비에서 종종 마주친다. 이전과는 다른 반가움으로 인사와 안부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이 달라졌을 뿐. 그리고 생각한다. 이 건물에는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있다고. 매일 아침 사람들이 감동할 것을 기대하며 그날의 노동을 다짐하는 사람이.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궁금해하고 쉬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창문 앞에 서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 마음에 담아둔 것을 일기에 적는 사람이. 치에코 씨를 떠올리면 건물 곳곳에 그가 있을 만한 자리마다 조명이 켜지는 것 같다. 치에코 씨가 없어도 그 자리를 알아볼 수 있다. 서로 이름을 알기 전에 치에코 씨가 나의 자리를 알아보았듯이. 하루하루. 우리 삶이 함께 흐르고 있다.
- 「치에코 씨의 정성스러운 일일」 중에서

내년 봄. 아직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오지 않았지만 내년 이맘때면 다시 시작될 봄을 상상해본다. 그때에도 느티나무 잎은 기지개를 켜듯 자라나고, 그 길을 지나는 기사님은 또 한번 흐뭇해질 것이다. 미루나무가 아닌 버드나무 잔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테고, 할머니는 달력 날짜를 보고 지난해보다 서둘러 보드라운 쑥을 캐러 나오시겠지. 그러다 6월이 오면 책방 옆 비파나무에는 살구보다 노란 열매가 익어가고, 하천 산책로를 걸을 땐 이르게 떨어진 계수나무 이파리를 보고 걸음을 멈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들어보면 산들산들 흔들리는 이파리. 어김없이 초여름을 사랑하게 될 테지. 그러다 겨울에 접어들 무렵엔 동목서 향을 맡고 반가워질 것이다. 내가 이 이름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떠올리면서, 함께 걷는 사람에게 넌지시 알려주게 될지도.
계절을 계절답게 하는 존재의 이름을 익히는 것. 그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익히는 일인 것 같다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을 지나치며 생각한다.
알아야 할 이름은 여전히 이렇게나 많다.
- 「미루나무 아니고 버드나무」 중에서

한 세트라도 이기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고, 경기에서 지면 바닥에 드러누워서 서럽게 울고, 그러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금세 다시 웃고. 숙소에서 나란히 누워 장난치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학교로 돌아와서는 매일 연습하고. 그 속에서 어떤 아이는 좋아하는 아이가 생겨서 틈만 나면 그 아이를 몰래 살펴봐. 아이들 성장은 천천히 일어나는 일이라서 교사로 일하면서도 그 과정을 알아채는 게 쉽지는 않은데, 정구부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게 성장이라는 걸 느껴. 지금 내가 아주 중요한 걸 지켜보고 있구나. 성장한다는 건 되게 멋진 일이구나. 요즘엔 그런 생각을 자주 해.
- 「우리의 비하인드」 중에서

그날 치료가 끝나고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정’과 병원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픈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옆과 뒤에 서 있던 사람들에 대해. 간절하면서도 지루하고, 분주하면서도 활기 없는 병원 풍경에 대해. 이제는 재활 치료를 받는다는 말을 들으면 오늘 본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는 이야기도. 그러자 ‘정’이 말했다. 자신은 친구들이 사는 동네에 직접 가보는 게 좋았다고. 그 친구가 사는 집 근처, 자주 일하는 공간, 좋아하는 장소를 보고 나면 그 친구가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떠올려볼 수 있으니까. 그러면 만나지 않더라도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 「우리를 기다리는 다음으로」 중에서

“너는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렵지 않았어?”
“처음엔 저도 어려워서 많이 틀렸어요.”
“틀리면 부끄럽지 않았어?”
“부끄럽지 않았어요.”
“왜?”
“왜냐하면 저는 배우는 중이니까요. 원래 배울 때는요, 어려운 거예요.”
아이는 지난주에 내가 배운 악보를 보더니 식탁 위에 양손을 올려 마치 건반이 있는 것처럼 연주를 했다. 아홉 살이면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쭉 편 손가락과 손톱이 여전히 작았다. 아직 자랄 일이 많이 남은 손.
- 「자라는 손」 중에서

이십 대에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왜 지금보다 옛날이 더 좋게 느껴질까. 이때는 무얼 하든 재밌었던 것 같은데”라는 말을 꺼냈을 때 친구가 들려주었던 대답.
“그때 우리가 웃는 사진을 많이 남겨놔서 그래. 미래에도 우리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야. 분명히 있을 거야.”
어딘가로 가는 기차 안에서 무심히 휴대전화만 보다가 뺨에 닿는 빛이 달라져 창문 너머를 바라볼 때가 있다. 이름 모를 강에 맺힌 윤슬, 들판 한가운데 햇빛을 받는 커다란 나무처럼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 중에도 마음을 뺏기는 예쁨이 있어 차창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본다. 보지 않았더라면 존재하는지 몰랐을 풍경이 차례차례 뒤로 밀려난다. 살아가다 문득 “미래에도 우리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야”라는 말이 생각날 때면 기차에서 바깥 풍경을 더 자세히 보려고 창문에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이 떠오른다.
그럴 땐 조금 더 먼 곳을 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미래에 기대는 자세가 된다.
- 「우리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야」 중에서

두 계절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시간을 자주 떠올린다.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몇 분의 시간을. 그 순간엔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우리 다시 만나자는 말을 했지만 할아버지가 떠난 직후에는 그 말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우리가 또 만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믿을 수 있다고, 살아가기 위해선 믿고 싶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다거나, 나란히 걷고 싶다거나, 다시 한번 옆에 앉고 싶다거나, 전화를 걸고 싶다는 바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직후에는 이전과 다르게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로든. 눈으로든. 빛으로든. 바람으로든.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했던 새로든. 어느 날 꿈에서는 예전 모습 그대로로.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어도 다가올 시간을 믿을 수는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
- 「우리 또 만나」 중에서

가족 중에서 꿈을 가장 많이 꾸는 건 나였다. 여러 날 여러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울게 되는 꿈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나룻배를 타고 잔잔한 강을 건너는 할머니를 보았다. 꿈속에서 나는 스무 살을 막 넘긴 나이였고, 할머니는 왜인지 나에게는 비밀로 하고 이름 모를 동네로 가는 중이었다. 그 동네에는 할머니를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곳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는 걸 꿈속의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호수 같은 강이었다. 할머니는 편한 자세로 누워 하늘을 보며 잔잔한 물결을 느끼고 있었다. 더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할머니는 매일 이렇게 강을 건넜던 거구나.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 순한 바람에 무언가 실려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멀어지는 배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잠에서 깬 후에도 한동안 침대에 누워 아름다운 강을 건너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꿈 밖에서는 본 적 없던 낯선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언제나 내가 바라왔다는 것을. 할머니 삶에서 내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기쁨이 더 많이 존재했기를. 내가 아는 기쁨이 전부가 아니기를. 그 기쁨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 「꿈에서는 가능해」 중에서

메모를 다시 읽으며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왜 좋았을까. 나는 왜 이런 것들이 마음에 걸릴까. 왜 이런 장면이 내가 알아야 할 삶 같을까. 그러다 불현듯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아버지는 운전을 하고 할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 병원에 면회를 다녀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뒷좌석에 앉은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귀 뒷면이 닮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기해하며 조용히 기뻐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귀 뒷면을 본 적 없을 테니 닮았다는 걸 모를 테지. 기억해 두었다가 말해줘야지 생각하곤 적어두기만 한 메모. 이제는 할아버지에겐 알려줄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들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아버지는 뭐라고 대답할까’라는 문장을 적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글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결국 내가 쓰는 이야기는 모두 내게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 「그렇게 시작되는 글쓰기」 중에서

서른셋. 절에서 돌아온 언니는 어머니가 오래 운영했던 꽃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괜찮아진 것 같은 날들에도 여전히 괴로운 마음과 숨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찾아왔지만 그럴 때마다 절에서 배운 것을 떠올렸다.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지금의 나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리고 언니가 지금 선택한 자신의 자리를 생각했다. 언니가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꽃집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공간에 들여놓은 살아 있는 것들이 시들거나 죽지 않도록 살뜰히 보살폈다. 손님이 주문한 꽃다발을 공들여 만들고, 손님이 없는 날엔 틈틈이 좋아하는 그림도 그렸다. 그러는 동안 언니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에 찾아든 평온함을 느꼈다. 새잎처럼 튼튼하고 보드라운, 마흔이 된 언니가 비로소 찾은 평안함이었다.
- 「나를 향한 환대」 중에서

저자


김달님
나에게 달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말했다. 너는 가을과 닮은 사람이라고. 이 책을 쓰는 봄과 여름 동안 줄곧 가을을 생각했다. 남은 날들에도 가을 같은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에세이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 등을 썼다.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moonlight_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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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도서명: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주제 분류: 에세이 > 그림에세이, 동물에세이,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달님
출판사: 미디어창비
판형: 123 x 198 mm / 양장제본, 형압 컬러박 / 260쪽(변동 가능) (4도 컬러)
출간일: 2023년 9월 12일
정가: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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