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2일 : 45호
시만 쓰고 살 수 있는 세상을
2024년 여정을 시작한 '타이피스트 시인선'의 003번으로 조성래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총 6부로 구성된 차례의 지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인도 - 창원 - 순천 - 부천 - 미지 - 변명을 주제로 시가 엮여있는데요, 2,3,4부의 도시들은 시인이 노동하며 거쳐온 장소들이라고 합니다. 이시인은 '매일 아침 여섯 시,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지긋지긋한 생활을 멈추지 않듯 맨몸으로 시간을 맞으며 시를 씁니다. 공간감이 선명한 만큼 시가 묘사하는 장면들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입을 닫은 채 통근버스에 오른 사람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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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여정을 시작한 '타이피스트 시인선'의 003번으로 조성래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총 6부로 구성된 차례의 지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인도 - 창원 - 순천 - 부천 - 미지 - 변명을 주제로 시가 엮여있는데요, 2,3,4부의 도시들은 시인이 노동하며 거쳐온 장소들이라고 합니다. 이 시인은 '매일 아침 여섯 시,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이 시인은 지긋지긋한 생활을 멈추지 않듯 맨몸으로 시간을 맞으며 시를 씁니다. 공간감이 선명한 만큼 시가 묘사하는 장면들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입을 닫은 채 통근버스에 오른 사람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출근과 퇴근이 반복되는 어느 날 “내가 나를 달래느라 /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는 날이다”라고 말하는 마음도 꼭 알 것 같습니다. 2020년 데뷔 당시 이문재, 이수명 시인으로부터 “자기 언어를 다루는 솜씨에도 기교를 넘치지 않게 조절하는 힘이 있다”라고 이 시인의 시를 평했습니다.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마음 한철>)라는 한 줄로 통영이라는 도시에 새로운 말을 붙인 시인, 박준이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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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쪽 :
그러다가 문득
네가 함께 먹은 술갑승로 보내 놓은
삼만 원 돈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자
요 며칠간 그것을 어떻게 살뜰히 쓸가 고민 속에 빠져들고 그리고 또
이것을 어떻게 하면 시로 잘 써볼 수 있을지 따위의
생각들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Q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의 주인공들은 수능 0세대, 75년생 동년배 여성입니다. "살찌는 거야 일도 아니지"(15쪽) 현재를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는 태도가 느껴져 이 대사부터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인물들의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적이라 이런 태도, 어려움을 어려운 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
난주나 정은, 미경이 처음부터 ‘그렇게 그런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아니었을 겁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동거렸을 테고,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 아등바등 쩔쩔맸을 겁니다. 혹은 어쩌지 못하는 걸 삭이느라 끝내 스스로를 부정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시절의 일입니다. 오십 년, 쉰 살이란 세계는 대적해 맞서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뒹굴고 같이 굴러가야 탈이 안 난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는 시간, 내 스스로가 바로 그 세계라는 걸 익히 깨달은 나이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그런대로’ 사는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닫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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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의 주인공들은 수능 0세대, 75년생 동년배 여성입니다. "살찌는 거야 일도 아니지"(15쪽) 현재를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는 태도가 느껴져 이 대사부터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인물들의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적이라 이런 태도, 어려움을 어려운 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
난주나 정은, 미경이 처음부터 ‘그렇게 그런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아니었을 겁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동거렸을 테고,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 아등바등 쩔쩔맸을 겁니다. 혹은 어쩌지 못하는 걸 삭이느라 끝내 스스로를 부정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시절의 일입니다. 오십 년, 쉰 살이란 세계는 대적해 맞서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뒹굴고 같이 굴러가야 탈이 안 난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는 시간, 내 스스로가 바로 그 세계라는 걸 익히 깨달은 나이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그런대로’ 사는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닫지 않았을까요?
Q :
세 친구는 강릉 여행을 떠나 진짜 우리 이야기를 합니다. 강릉 이후 이 친구들이 어느 여행지에 가면 좋을까요? 친구들을 안내하고 싶은 장소가 궁금합니다.
A :
오 년쯤 뒤에 떠날 수 있다면, 새벽 전나무숲을 걸어 들어가 문창살 무늬 고운 내소사를 걷게 하고, 만약 십 년 뒤라면 늙은 몸뚱이 서로 가릴 것도 없이 소탈하게 목욕이나 같이하죠. 목욕 끝나고는 같이 미역국 먹고. 울진으로 가겠습니다. 혹, 소설 속 대사처럼 이십오 년 뒤인 일흔다섯 살에야 다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제주도로 보내주고 싶네요. 바다가 보이는 죽집에서 소주와 전복죽을 앞에 두고 서로에게 아직 예쁘다고, 여전히 근사하다고 칭찬해주며 깔깔대다 우르르 몰려 나가 담배를 같이 피우는 할머니들이 상상됩니다. 그러다 각자의 잔을 들고 이십오 년 뒤에는 못 만날 테니 오늘은 죽을 때까지 마셔보자고, 너희들이라면 같이 죽어도 좋겠다는 흰소리나 해대며 또 스무 살적 이야기를 하는 세 할머니들의 시끌시끌한 제주도의 밤이 문득 떠오르네요.
Q :
1994년 세 친구는 도서관 서가를 거닐고 있습니다. 작가가 오래 머물렀던 서가 번호와 그 서가에 놓였던 책들이 궁금합니다. (최대 3권 정도만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A :
당연히 800번대 문학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810 한국문학. 811 시, 812 희곡, 813 소설 서가에서만 서성였죠. 800번대가 아니면 600번대 예술. 668번 사진집 혹은 688번 영화. 그랬던 스무 살의 저는 이제 오십을 앞두고 300번대 서가를 유심히 살핍니다. 특히 334 사회문제, 335 생활문제, 336 노동문제, 337 여성문제 코너에 오래 머무는데요. 책등의 제목만 봐도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무거운 발걸음과 무거운 마음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 보던 책 중 추천을 하자면 아래 세 권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최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문학과지성사, 1992)
윤대녕, 『은어낚시통신』(문학동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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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위키 미제사건 문서에 정리되었을 법한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동진 평론가가 4월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한 (영상 링크) <컬트>를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데요 찰스 맨슨 패밀리(이 이야기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로 만들기도 했지요), 짐 존스와 인민사원 등 (이 얘기를 소재로 한 일본 추리소설 <명탐정의 제물>도 재밌습니다. ) 이미 창작물로 여러 번 재가공 소개되기도 한 컬트 집단들을 번성과 몰락의 역사로 들여다보며 세뇌와 조종이라는 '컬트'의 공통적인 원리를 훑는 책입니다.
제28회 한겨레문학상을 2023년에 수상한 김희재의 소설 <탱크>도 이런 컬트적인 믿음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탱크의 시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탱크라는 이름의 컨테이너에서 아래 기도문 외우며 울고 기도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우리는 꿈의 미래를 안으로 끌어온다.
믿고 기도하여 결국 가장 좋은 것이 내게 온다. (11쪽)
짐 존스 같은 컬트 지도자는 '간절하고 외로운 영혼들을 골라내는' 장소로 종교집단을 선택했습니다. 컬트 지도자들은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 상실과 애도, 강박적인 환경과 실패 등을 이유로 약해진 마음을 알아보고 그 마음에 올가미를 씌웁니다. 지푸라기라도 쥐고 믿고 싶은 그 약한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소설이 묘사한 공기가 희박한 컨테이너 박스 속에 꼭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읻다 출판사의 편집자 김소띠입니다. 네, 소띠라서 김소띠입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제가 오늘 소개할 책의 작가님도 소띠입니다. 어쩌면 소설의 주인공 ‘메리 소이’도 소띠일지도 모르겠네요. 소띠들이 함께 일군 《메리 소이 이야기》가 어떤 책일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어린이책 편집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문학책을 만들게 되었지만, 몇 년간은 퇴근 후에 꾸준히 동화와 그림책을 읽었고, 어린이책 세미나에도 틈틈이 참여했었습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얘기인데요, 한 출판사에서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의 일이 기억납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무턱대고 손을 들어 앞에 있는 세 명의 작가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물었었죠. “송미경 작가님, 왜 소설은 안 쓰시나요?”라고요. 당황한 얼굴의 어린이책 관계자들을 뒤로한 채 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작가님의 동화를 읽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작가님의 소설을 읽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라고요. 그리고, 10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정말 그런 날이 왔습니다. 동화 작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송미경 작가의 첫 소설을 만들게 된 거지요. 심지어 읻다에서 나온 첫 한국 소설이랍니다. (속닥속닥. 조우리, 조현아, 박해울, 애매 동인, 서수진 작가의 소설이 여름까지 연이어 나올 예정입니다. 속닥속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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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읻다 출판사의 편집자 김소띠입니다. 네, 소띠라서 김소띠입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제가 오늘 소개할 책의 작가님도 소띠입니다. 어쩌면 소설의 주인공 ‘메리 소이’도 소띠일지도 모르겠네요. 소띠들이 함께 일군 《메리 소이 이야기》가 어떤 책일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어린이책 편집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문학책을 만들게 되었지만, 몇 년간은 퇴근 후에 꾸준히 동화와 그림책을 읽었고, 어린이책 세미나에도 틈틈이 참여했었습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얘기인데요, 한 출판사에서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의 일이 기억납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무턱대고 손을 들어 앞에 있는 세 명의 작가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물었었죠. “송미경 작가님, 왜 소설은 안 쓰시나요?”라고요. 당황한 얼굴의 어린이책 관계자들을 뒤로한 채 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작가님의 동화를 읽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작가님의 소설을 읽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라고요. 그리고, 10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정말 그런 날이 왔습니다. 동화 작가이자 그림책 작가인 송미경 작가의 첫 소설을 만들게 된 거지요. 심지어 읻다에서 나온 첫 한국 소설이랍니다. (속닥속닥. 조우리, 조현아, 박해울, 애매 동인, 서수진 작가의 소설이 여름까지 연이어 나올 예정입니다. 속닥속닥.)
《메리 소이 이야기》는 어릴 때 잃어버린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메리 소이의 가족들은 메리 소이를 만나게 될까요?’ 아마 이게 궁금하시겠지만 저는 다른 게 더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메리 소이’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을지가 말이죠. 분명히 무사하고 평안한 곳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을 겁니다. 분명히 알라딘에서만 책을 살 테니까, 이 앱레터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저보다 먼저 ‘메리 소이’를 만나게 되신다면 꼭 말씀 전해주세요. 《메리 소이 이야기》를 한 권 꼭 선물하고 싶다고요.
- 편집자 김소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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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출간한 김이설 작가의 소설과 함께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해 봅니다. 두 소설 모두 분량이 길지 않아 마음이 부대낄 때도 손에 쥐어볼 만합니다. '소설, 향' 시리즈로 출간된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시를 쓰고 싶어'라는 오랜 꿈을 동생에게 고백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가정적 의무에 갇힌 인간이 자기 문장을 실마리 삼아 이 미로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필사라는 동작으로 이어집니다.
<구의 증명>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은 '핀 시리즈'로 출간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 배달된 편지를 쥔 태희는 그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무작정 자기 상처를 적어내려갑니다. 제대로 배달되지 않을 편지기에 오히려 정직할 수 있었습니다. 써내려가는 손과 함께 그는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라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갑니다.